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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이야기

스피노자의 욕망-욕망은 인간의 본질이다

by 마크튭 2023.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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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NG IMAGE CREATOR에서 스피노자를 만화스타일로

만약 당신이 무더운 여름에 연인과 함께 물가에서 즐겁게 놀고 있을때 저 멀리 깊은 강물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어린이를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이때 당신은 아이의 위험을 외면하거나 아이를 돕는 것 두가지의 선택중에 택일을 할 것이다. 만약 후자를 선택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

스피노자이전 시대의 견해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아이를 외면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고 당신의 자유로운 의지가 고귀한 행동을 선택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우리의 영혼을 두마리 말(하나는 욕망, 다른 하나는 의지)이 끄는 마차에 비유해 마차위에 마부인 이성이 고삐를 잡고 욕망을 조절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시대에는 욕망은 철학의 계륵이자 버린 자식으로 취급해서 욕망을 잉태시키는 육체를 소크라테스는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다."이라고 하며 육체는 영혼을 볼모로 잡고있는 인질범으로 전락시켰다.

반면, 스피노자의 견해에 따르면 당신에겐 아이를 외면하고 위험을 피하려는 욕망과 설령 목숨을 걸지라도 아이를 구하고 싶은 욕망이 서로 겨루다가 더 큰 욕망인 아이를 구하고자 하는 고귀한 욕망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당신의 행동을 결정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스피노자에 이르러 오랫동안 방치된 육체를 부활시키고 악의 화신으로 여겨지던 욕망 인간의 본질로 부상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욕망의 재발견과 아울러 육체와 정신이 하나라는  '심신일원론'을 설파한 것이다. 그리고 타인이나 외부의 압력에 의해서가 아닌 내부적 본성으로부터 스스로 넘쳐나는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진정한 자유라고 보았다.

이성을 중시한 플라톤과 달리 스피노자는 욕망을 영혼의 본질로 생각해 욕망이 마부의 자리에서 두마리말(이성과 감정)을 이끌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우리 영혼의 가장 깊은 중심에서 만날수 있는 것이 욕망이며, 이성은 단지 욕망이 원하는 바를 실현하기 위해 작동하는 우리 영혼의 브레인이며, 감정은 욕망이 얼마나 성취되었는지를 나타내는 눈금에 해당할 뿐이다. 

욕망이 우리 영혼의 근원적인 뿌리라면, 욕망 자체의 뿌리는 무엇일까요? 스피노자는 그것은 자신이 자신안에서 유지되길 원하는 욕망이다라고 하는데 이런 근원적인 욕망, 즉  '삶에 대한 욕망' 또는 '자기 보존의 욕망'을 코나투스(conatus,노력,추구,경향,관성을 뜻하는 라틴어)라고 명명했다.

에리히 프롬이 우리 삶의 형태를 존재와 소유로 구분했는데, 당당히 존재하는 자가 자기만족에 충만한 사람인 반면, 소유에 집착하는 사람은 부와 명예와 권력을 소유함으로써 남들에게 인정받고 명예욕에 사로잡힌 사람이므로 우리는 소유가 아닌 존재로서 자기만족으로서 타인의 욕망이 아닌 자신의 욕망을 향해감으로써 남들의 인정이 아닌 자신에 대한 인정으로 삶을 영위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상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의 인문학"(저자 심강현,을유문화사)을 참고하여 욕망을 중심으로 쓴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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