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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주장하는 내용 중 하나인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말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수단이라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치사상을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이라고 한다. 이처럼 마키아벨리는 권모술수의 대가, 악의 교사, 독재자를 위한 지침서를 쓴 사악한 정치이론가로 불리고 있다.
사실, 그의 실제 삶은 애국적인 인물이었으며 마음씨 좋아서 친구들이 그의 돈을 상습적으로 떼어먹기도 했고 고아된 어린 친척을 형편이 어려움에도 입양하여 호구책을 마련해기도 했고 피렌체 제2서기장일때는 공금을 아껴쓰고 사심이 없는 인물이었다.
근데, 왜 그는 악의 교사로 지탄을 받게 된 것일까? 강자들의 눈에 비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마치 천기를 누설하듯이 권력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솔직하게 드러내는 마키아벨리의 지혜와 통찰력이 두려워서 경쟁자가 그의 책을 읽지 못하게 하기위해 그를 사악함의 대명사로 몰아간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세금체납자의 아들로 변변한 학력이 없었던 29살(1498년5월28일)때 피렌체의 외교를 담당하는 제2서기장으로 선출되어 전성기를 보냈으나 피렌체 공화정 몰락과 아울러 43살(1512년 11월17일)에 공직에서 해임되고 반란혐의로 투옥되었다. 바로젤로의 감옥에서 그 악명높은 '스트라파도(Strappado)'(날개꺾기 고문, 밧줄로 죄수의 두팔을 뒤로 묶어 공중에 매달았다가 대리석 바닥으로 내동댕이치는 형벌)를 여섯번이나 당했지만 "조국에 대한 나의 충성은 나의 가난이 증명하고 남는다."라고 무죄를 주장했으며, 레오10세 취임에 따른 대대적인 사면으로 감옥에서 풀려나 산탄드레아의 허름한 시골집에 칩거하며 1527년 임종할때까지 무려 15년동안 유배와 같은 실업자 생활을 보냈다.
1513년8월에서 1514년 1월사이에 집필한 군주론을 1517년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헌정했으나 그는 그 책을 거들떠보지 않았다.그래서, 마키아벨리는 메디치가문에 대한 기대와 꿈을 접고 로마사 논고( 로마 공화정의 위대함을 정치철학적으로 분석한 책)집필에 자신의 모든 역량을 집중시킨다.그러나 1519년 루첼라이 정원모임의 좌장이자 로마사논고의 헌정 대상인 코시모 루첼라이가 죽으면서 자비로운 후원자를 잃게 되었고, 우르비노의 공작이 죽으면서 관직으로 나아갈수있는 마지막 희망도 잃게 됐다.
1519년부터 공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전문작가로 밥벌이에 나서기로 작심하게 된다. 그래서 나온 코미디가 <만드라골라>와<클리지아>이다. 그리고, 클리멘트7세가 의뢰한 피렌체사를 1525년 피렌체사 집필을 완료했다.이때 메디치가문으로부터 받은 공직이 메디치가문의 몰락으로 피렌체에 공화정 정부가 들어서며 그는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불운을 겪게된다. 그리고 1527년 6월21일 임종을 맞이했으며 그의 유해는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에 묻혔다. 이곳에는 피레체가 배출한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 천재 과학자 갈릴레이 갈릴레오, 천재시인 단테(빈무덤)의 무덤이 안치되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현자 마키아벨리 (김상근지음,21세기북스 출판)의 내용을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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